노마설(홍우원)-문제 모음 9제(1차)
숭정(崇禎) 9년 4월에, 주인이 노비 운(雲)을 시켜 마구간 바닥에 매어 엎드려 있는 말을 끌어 내오게 하고, 말에게 이르기를, “안타깝구나, 말아. 너의 나이도 이제 많아졌고 힘도 쇠하여졌구나. 장차 너를 빨리 달리게 한즉 네가 달릴 수 없음을 알며, 장차 너를 뛰게 한즉 네가 그럴 수 없음을 안다. 내가 너에게 수레를 매어 매우 멀고 험한 길을 넘게 한즉 너는 넘어질 것이며, 내가 너에게 무거운 짐을 싣고 풀이 우거진 먼 길을 건너게 하면 너는 곧 죽을 것이다. 말이여, 장차 너를 어디에 쓰겠느냐? 너를 백정에게 주어 뼈와 살을 바르게 할까? 나는 너에게 차마 그럴 수는 없다. 장차 너를 성 안의 저자거리에 가서 팔더라도 사람들이 너에게서 무엇을 얻겠느냐? 안타깝다 말아. 나는 이제 너의 재갈을 벗기고 굴레를 풀어 놓아 네가 가고자 하는 곳을 너에게 맡길 것이니, 가거라. 나는 너에게서 취하여 쓸 것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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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낸다는 건(황동규)-문제 모음 9제(1차)
다 왔다. 하늘이 자잔히 잿빛으로 바뀌기 시작한 아파트 동과 동 사이로 마지막 잎들이 지고 있다, 허투루루. 바람이 지나가다 말고 투덜거린다. 엘리베이터 같이 쓰는 이웃이 걸음 멈추고 ㉢같이 투덜대다 말고 인사를 한다. 조그만 인사, 서로가 살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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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김춘수)-문제 모음 9제(1차)
㉠어쩌다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 울타리는 슬픈 소리로 울었다. 맨드라미, 나팔꽃, 봉숭아 같은 것 철마다 피곤 소리없이 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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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접목(황순원)-문제 모음 8제(1차)
종호는 준학이를 군용 침대 한끝에 앉힌 후, “너 정말 어디 아픈 데 있는 거지?” 하고 물었다. 준학이는 창백하고 동글납작한 얼굴을 반쯤 모로 숙인 채, “아뇨.” 하고는 저고리 앞섶만 만지작거렸다. “갑자기 배가 아프다든가 그렇지 않니?”
모든 첫 번째가 나를(김혜수)-문제 모음 9제(1차)
모든 첫 번째가 나를 끌고 다니네 아침에 버스에서 들은 첫 번째 노래가 하루를 끌고 다니네 나는 첫 노래의 마술에서 풀려나지 못하네 태엽에 감긴 자동인형처럼 첫 노래를 흥얼거리며 밥을 먹다가 거리를 걷다가 흥정을 하다가 거스름돈을 받다가 아침에 들은 첫 번째 노래를 흥얼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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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서안나)-문제 모음 10제(1차)
등이 가려운 때가 있다 시원하게 긁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 그곳은 내 몸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 신은 내 몸에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을 만드셨다
그날이 오면(심훈)-문제 모음 10제(1차)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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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장영희)-문제 모음 10제(1차)
초등학교 때 우리 집은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작은 한옥이었다. 골목 안에는 고만고만한 한옥 여섯 채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한 집에 아이가 보통 네댓은 됐으므로 골목길 안에만도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줄잡아 열 명이 넘었다. 학교가 파할 때쯤 되면 골목은 시끌벅적,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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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밥(문정희)-문제 모음 8제(1차)
(I410-113-24-02-088016886) 아픈 몸을 일으켜 혼자 찬밥을 먹는다 찬밥 속에 서릿발이 목을 쑤신다 부엌에는 각종 전기 제품이 있어 일 분만 단추를 눌러도 따끈한 밥이 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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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박성우)-문제 모음 10제(1차)
아버지는 두 마리의 두꺼비를 키우셨다 해가 말끔하게 떨어진 후에야 퇴근하셨던 아버지는 두꺼비부터 씻겨 주고 늦은 식사를 했다 동물 애호가도 아닌 아버지가 녀석에게 만 관심을 갖는 것 같아 나는 녀석을 시샘했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녀석을 껴안고 주무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기회는 이때다 싶어 살짝 만져 보았다 그런데 녀석이 독을 뿜어대는 통에 내 양 눈이 한동안 충혈되어야 했다 아버지, 저는 두꺼비가 싫어요
정직한 사기한(오영진)-문제 모음 9제(1차)
가족으로 구성된 위조지폐 사기단이 선량한 청년을 속여 위조지폐 행각에 끌어들이는 내용을 통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혼란하고 가난한 서민 생활을 바탕으로 배금주의 풍조, 타락한 양심의 일단을 풍자하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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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소녀(이규보)-문제 모음 10제(1차)
어린 딸의 얼굴이 눈같이 희고 총명하기 이를 데 없어 두 살에 능히 말을 하되 앵무새보다 능란하였다. 세 살에 수줍음을 아는 듯 놀아도 대문 밖을 나서지 않고 금년이 바로 네 살인데 능히 길쌈질을 배우기도 했다.
고완(이태준)-문제 모음 10제(1차)
우리 집엔 웃어른이 아니 계시다. 나는 때로 거만스러워진다. 오직 하나 나보다 나이 더 높은 것은, 아버님께서 쓰시던 연적이 있을 뿐이다. 저것이 아버님께서 쓰시던 것이거니 하고 고요한 자리에서 쳐다보면 말로만 들은, 글씨를 좋아하셨다는 아버님의 풍의(風儀)가 참먹 향기와 함께 자리에 풍기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