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P국어문제연구소

  • 말하는 징소리(문순태)-문제 모음 9제(1차) [앞부분의 줄거리] 칠복과 방울재 사람들은 댐 건설로 사라지게 된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진다. 딸 금순과 함께 도시로 온 칠복은 도망간 아내를 찾기 위해 칠보증권 옥상에 올라가 징을 치는데, 징 소리에 향수를 느낀 사장의 눈에 띄어 칠보증권의 경비원으로 취직을 하게 된다. 칠복은 매일 옥상에 올라가 점심시간을 알리는 징을 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칠복은 딸과 함께 옥상에 오르며 방울재의 마지막 장승제를 떠올린다. “정든 땅 방울재를 떠나는 이민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니 천지신명께서는 전과 다름없이 이들을 보살펴 주시옵고…….” 이날 축문은 다른 때보다 길고 애절하여 제사에 참여한 방울재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축문이 끝나면서 여기저기서 팽팽 코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칠복이도 콧대가 시큰시큰해지는 바람에 손으로 콧마루를 잡고 서너 차례 코를 풀었다. 제주(祭主)의 호명에 따라 호주들이 제단 앞에 나와서 8절지 창호지를 불사르며 각기 가정의 만복을 기원하는 소지*가 끝나자, 여지껏 집 뒤에 숨어 있었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방울재의 모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제사 음식을 나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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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하는 돌(문순태)-문제 모음 22제(1차) 장돌식이한테 마을에 내려가 삽과 괭이를 가져오도록 시킨 나는 눈을 빤히 뜨고 누워 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보기가 무서워서 빨갛게 단풍이 든 떡갈나무 잎을 뜯어 으스스한 동굴의 입구처럼 보이는 아버지의 눈을 가렸다. 그날 우리들은 썩은 돌비늘이 두껍게 깔린 땅을 파고 아버지를 묻었다. 흙을 져 나를 수도, 떼를 뜰 수도 없어 평장(平葬)을 하고 둘이서 끙끙거리며 돌을 날라다 무덤 위에 덮었다. 나는 아버지의 돌무덤을 곰배팔이 장돌식이한테 부탁한 뒤, 상엿집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날이 밝기 전에 쫓기듯 월곡리를 떠났다. 월곡리를 떠나면서 나는 장돌식이한테, 월곡리 사람들을 머슴으로 부릴 수 있을 만큼 큰돈을 벌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내 결심을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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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르는 북(최일남)-문제 모음 28제(1차) 그날 밤, 민 노인은 근래에 흔치 않은 노곤함으로 깊은 잠을 잤다. 춤판이 끝나고 아이들과 어울려 조금 과음한 까닭도 있을 것이었다. 더 많이는 오랜만에 돌아온 자기 몫을 제대로 해냈다는 느긋함이 꿈도 없는 잠을 거쳐 상큼한 아침을 맞게 했을 것으로 믿었는데 그런 흐뭇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다 저녁때가 되어 외출에서 돌아온 며느리는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성규를 찾았고, 그가 안 보이자 민 노인의 방문을 밀쳤다. “아버님, 어저께 성규 학교에 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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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지(김정한)-문제 모음 13제(1차) 술이 알맞게 되었을 때, 청년 신사는 노래를 중지시키고, 예의 청산유수식 구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농촌 경제가 어떠니, 구태의연한 영농방법을 버리고 근대화를 해야 되느니,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들의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느니, 또 도시에 주택단지 공업단지가 서듯이 농촌에는 식량단지, 채소단지, 심지어 돼지단지까지 있어야 하느니 등, 그야말로 먼 앞날을 내다보는 유익한 얘기들이 꼬리를 물 듯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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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로 간 코미디언(김연수)-문제 모음 13제(1차) 편지에 따르면, 2001년 9월 11일 텔레비전으로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한 뒤, 그녀는 오래전 미국에서 실종된 아버지의 행적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녀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알이 두꺼운 안경을 쓰고 가족들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아침이면 숙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얼음물에 담가 둔 물수건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아직 어렸던 그녀를 바라볼 때면 검정색 뿔테 안경 너머의 두 눈동자가 연민으로 젖어 드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감정이 없는 짐승처럼 일없이 주르르 눈물을 흘리는 때가 더 많았다. 그녀로서는 아버지의 눈물을 단 한 방울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안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77년 이리역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역 근처 삼남극장에서 공연을 앞두고 대기실에 있다가 크게 다친 뒤부터였다. 그때, 극장 지붕이 모두 날아간 삼남극장에는 하춘화도 있었고, 이주일도 있었다고 아버지는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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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꺼삐딴 리(전광용)-문제 모음 24제(2차) 이인국 박사의 병원은 두 가지의 전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병원 안이 먼지 하나도 없이 정결하다는 것과, 치료비가 여느 병원의 갑절이나 비싸다는 점이다. ㉠그는 새로 온 환자의 초진(初診)에서는 병에 앞서 우선 그 부담 능력을 감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신통치 않다고 느껴지는 경우에는 무슨 핑계를 대든, 그것도 자기가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니라 간호원더러 따돌리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중환자가 아닌 한 대부분의 경우 예진(豫診)은 젊은 의사들이 했다. 원장은 다만 기록된 진찰 카드에 따라 환자의 증세에 아울러 경제 정도를 판정하는 최종 진단을 내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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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쥐잡기(김소진)-문제 모음 20제(1차) 휴전 협상이 한창 진행되던 어느 날 아침 식사 뒤 열외 한 명 없이 모두 퀸셋 안에 대기하고 있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 날 아침 따라 유별나게 어린아이 ⓐ주먹만한 고깃덩이들이 걸려서는 모두들 포식을 한 다음 담벼락 밑에 옹기종기 모여 해바라기를 하며 담배를 한 대씩 돌려 피고 나서야 퀸셋 안으로 들어갔다. 당시 수용소 안에서는 술이니 담배니 할 것 없이 다 뒤거래가 되고 있었다. 내려온 명령의 내용을 듣고는 모두들 기가 턱 막혔다. 이쪽에 그대로 남을 사람 저쪽으로 되돌아갈 사람을 가르는데 ⓑ호각 소리 하나로 판가름을 한다는 것이었다. 호각 소리에 따라 복도 하나 사이에 두고 이북 갈 사람은 저쪽에 앉고 이남에 남을 사람은 이쪽에 앉으라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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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탑(황석영)-문제 모음 12제(1차) [앞부분 줄거리] 베트남 전쟁에 참전 중인 ‘나’는 보충병으로 차출되어 작전 지역인 R. POINT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한 분대의 병사들과 함께 월남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오래된 탑을 지키라는 무모한 임무를 맡게 된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교전으로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작전이 변경되어 미군까지 철수한 날 밤 적과의 치열한 마지막 전투를 치르게 된다. 여러 개의 드럼통이 한꺼번에 굴러가는 듯한 소리로 클레이모어가 터지고, 돌격하던 게릴라들의 몸이 위로 펄쩍 솟았다가 떨어졌다. 방벽을 넘으려던 게릴라들도 직선으로 날아간 파편에 맞아 굴러떨어진다. 호각 소리가 길게 한 번 들리면서 적의 사격이 멎었다. 차가운 정적이 이 소강상태 속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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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발탄(이범선)-문제 모음 29제(1차) 피! 이건 분명히 피다! 철호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슬그머니 물 속에서 손을 빼 내었다. 그러자 이번엔 대야 밑 바닥에 한 사나이의 얼굴을 보았다. 철호의 눈을 마주 쳐다보는 그 사나이는 얼굴의 온 근육을 이상스레 흐룰흐룰 움직이며 입을 비죽거려 웃고 있었다. 이마에 길게 흐트러진 머리카락. 그 밑에 우묵하는 괘인 두 눈. 깎아 진 볼, 날카롭게 여윈 턱. 송장처럼 꺼멓고 윤기 없는 얼굴. 그것은 까마득한 원시인(原始人)의 한 사나이였다. 몽둥이 끝이, 모난 돌을 하나 칡덩굴로 아무렇게나 잡아메서 들고 동굴속에 남겨 두고 나온 식구들을 위하여 온 종일 숲속을 맨발로 헤매고 다니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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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영탑(현진건)-문제 모음 15제(1차) [앞부분의 줄거리] 화랑도를 숭상하는 ‘유종’과 당나라를 숭상하는 ‘금지’는 내심 서로 못마땅해 한다. 이런 가운데 ‘금지’는 아들 ‘금성’과 ‘유종’의 딸 ‘주만’과의 혼사를 진행하려 한다. 설령 금성이가 출중한 재주와 인물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유종은 이 혼인을 거절할밖에 없었으리라. 첫째로 금지는 당학파의 우두머리가 아니냐. 나라를 좀먹게 하는 그들의 소위만 생각해도 뼈가 저리거든 그런 가문에 애 딸을 들여보내다니 될 뻔이나 한 수작인가. 도대체 당학*이 무에 그리 좋은고. 그 나라의 바로 전 임금인 당 명황(唐明皇)만 하더라도 양귀비란 계집에게 미쳐서 정사를 다스리지 않은 탓에 필경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빚어내어 오랑캐의 말굽 아래 그네들의 자랑하는 장안이 쑥밭을 이루고 천자란 빈이름뿐, 촉나라란 두메 속에 오륙 년을 갇히어 있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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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된 일기(이승우)-문제 모음 12제(1차) 어느 여름날 나는 얼음과자를 사 먹기 위해 아버지의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훔쳤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눈치채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천 원짜리가 한 장만 있었다면 몰라도 다섯 장이나 있었다. 다섯 장 가운데 한 장 없어진 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아버지가 그렇게 꼼꼼한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돈을 빼내고, 얼음과자를 사기 위해 달려가고, 마침내 그 달콤하고 차가운 얼음과자를 입에 넣고 빨 때까지 나의 범죄가 들통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 단단한 확신의 원천은 욕망이었다. 달콤하고 시원한 얼음과자를 입에 넣고 빨아먹고 싶은 너무 큰 욕망이 염려와 불안을 잠재웠다. 그러나 얼음과자의 부피가 줄어들고 숨어 있던 막대가 드러나면서 염려와 불안은 서서히 깨어났다. 그렇게 단단하던 확신은 어느 순간 얼음과자 녹듯 녹아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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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박완서)-문제 모음 25제(2차) [앞부분 줄거리] 1·4 후퇴의 북적이던 피란길에서 수지는 먹을 것을 빼앗기기 싫어 동생 오목의 손을 일부러 놓아 버린 채 혼자 가족에게로 돌아오고, 가족을 잃은 오목은 서울의 한 고아원에서 성장한다. 전쟁 중 부모를 모두 잃은 수지와 오빠 수철은 부모의 유산으로 유복한 생활을 하는데, 고아원에서 자란 오목은 입시 학원의 급사로 취직하여 그곳을 거처 삼아 지내다가 설 연휴가 되자 혼자 남게 된다. 고아로 자랐으면서도 그렇게 홀로 있어 보긴 처음이어서 목이는 그 무서움증을 이겨 보려고 이렇게 자신에게 이야기를 걸었다. 그러면 사면의 벽이 즉각 같은 물음으로 그녀를 조소했다. “너는 누구냐? 너는 누구냐?” 그 악랄한 조소에 그녀는 위축되고 마침내 흔적도 없이 소멸해 버릴 것 같았다. 외부를 향해 굳게 셔터가 내려진 7층 건물 속의 정적과 공허는 그녀가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도 거대한 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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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죽는 사람(조해일)-문제 모음 12제(1차) [앞부분의 내용] 단역 전문 배우인 ‘그’는 일요일에도 촬영장에 나가 주인공인 신장균에 맞서는 악역 고독성의 졸개 역할을 맡아 촬영의 마지막 장면을 기다린다. 그리하여 마지막 대회전, 오늘의 주인공인 신장균과 고독성의 최후의 결판을 위해 장소가 어느 이름을 알 수 없는 왕릉으로 옮겨졌을 때 가을 햇빛은 이미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미 기진맥진해 있었다. 어느 임금의 능인지는 알 수 없으되 그 거대한 규모의 무덤 앞에는 그 임금의 생전의 위용을 말해주는 번듯하고 널따란 잔디밭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잔디밭은 이제 한여름의 푸름을 잃고 시들어져 누른빛을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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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젠하워에게 보내는 멧돼지(윤흥길)-문제 모음 13제(1차) [앞부분 줄거리] 국민학교 2학년생인 ‘나’는 걸구대(궐기대회)가 열릴 때마다 멧돼지를 서너 마리씩 미국 대통령이나 유엔 사무총장과 같은 외국 귀인들에게 보낸다는 것을 알고 의아해 한다. 어린 소견에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그런 식으로 마구 보내 주다가는 오래지 않아 나라 안의 멧돼지는 깡그리 씨가 마를 판이었다. 그렇잖아도 가뜩이나 육고기가 부족한 가난뱅이 나라에서 서양 부자 나라의 지체 높은 양반들한테 뭣 때문에 툭하면 그 귀한 멧돼지들을 보낸단 말인가. 또 보낸다면 그 멀고 먼 나라까지 무슨 수로, 그리고 어떤 모양으로 그 짐승들을 보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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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 산(이호철)-문제 모음 21제(2차) [앞부분 줄거리] 첫눈이 내린 어느 날 아침, ‘나’와 아내는 흰 남자 고무신 한 짝이 마당에 떨어진 것을 보고 왠지 모르는 공포감을 느끼며 불안해한다. ‘나’는 고무신짝을 보면서 어린 시절 이북에 살 때 밭에 떨어진 지까다비짝을 보고 공포를 느꼈던 기억을 떠올린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밭에 버려진 신짝 하나를 보고 공포에 떤 일이 있다. 비 오는 속의 무밭에 앞대가리 부분이 무잎이 무성한 밭 속에 처박혀 있는 검정색 ‘지까다비[地下足]’짝이었다. 발뒤축께의 세 개의 호크까지 말짱하던 일이 지금도 뒷등이 선득할 만큼 기억에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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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예(오상원)-문제 모음 32제(1차) 얼마나 산속 깊이 들어왔는지 모른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누웠을 때는 이미 새벽이 가까워서였다. 몹시 춥다. 몸을 약간 꿈틀거려 본다. 전 근육이 추위에 마비되어 감각을 잃은 것만 같다. 인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어렴풋이 눈 속에 부서지는 구둣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가까워진다. 시간이 된 모양이다. 몸을 일으키려고 움직거려 본다. 잠시 몽롱한 시각이 흐른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몹시 춥다. 왜 오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일까…… 몽롱하게 정신이 흩어진다. 전공 과목은? 왜 동무는 법과를 선택했었소? 어렸을 때부터 벌써 동무는 출신 계급적인 인습 관념에 젖어 있었소, 그것을 버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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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동네 김 씨(이문구)-문제 모음 18제(1차) 속으로는 떨떠름했으나 김도 주눅들지 않고 내뻗었다. “가뭄에 물치기는 땅임자의 도리구 조상에 효도유. 왜 그류?” 중년 사내가 천북면 수리 담당이거나 장승골에 사는 그 비스름한 것이려니 싶어 김은 더욱 뚝심에 기운을 모았다. 중년 사내가 말했다. “왜 그류? 왜 그러겄구먼…… ㉠남의 재산을 불법적으루 쓰구두 가뭄 핑계만 대면 단 중 아셔?” 중년이 대들려는 짓둥이를 하자 김은 급한 김에 말도 안 되는 대꾸를 했다. “내가 원제 불법적으루 썼슈. 물법적으루 썼지. 뇡민이 논에 물을 대는 건 당연히 물법적인 거유.” 그러자 중년은 어이가 없는지, 불이 일고 있던 눈을 끄먹거려 끄면서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끙  — 뭘 아는 사람이래야 말 같은 소리를 듣지…… 내 새끼두 야중에 이런 사람 될라 미서서 이 노릇 못집어친다니께. 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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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마(김동리)-문제 모음 21제(2차) 성기에게 역마살이 든 것은 어머니가 중 서방을 정한 탓이요, 어머니가 중 서방을 정한 것은 할머니가 남사당에게 반했던 때문이라면 성기의 역마 운도 결국은 할머니가 장본이라, 이에, 할머니는 성기에게 중질을 시켜서 살을 떼려고도 서둘러 보았던 것이고, 중질에서 못다 푼 살을, 이번에는, 옥화가 그에게 책 장사를 시켜서 풀어 보려는 속셈인 것이었다. 성기로서도 불경(佛經)보다는 암만해도 이야기책에 끌리는 눈치요, 중질보다는 차라리 장사라도 해 보고 싶다는 소청이기도 하여, 그러나, 옥화는 꼭 화개장만 보이기로 다짐까지 받은 뒤, 그에게 책전을 내어 주기로 했던 것이었다. 성기가 마루 앞 축대 위에 올라서는 것을 보자 옥화는 놀란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더운데 왜 인제사 내려오냐?” 곁에 있던 수건과 부채를 집어 그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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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리의 빛(이청준)-문제 모음 27제(1차) 여자가 이윽고 뭔가 사내를 달래듯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자리를 고쳐 앉았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그녀 앞에 안고 있던 북통과 장단 막대를 말없이 사내 앞으로 밀어 놓았다. 소리를 청해 들을 양이면 이제부턴 장단을 좀 잡아 달라는 시늉이었다. 소리를 청해 들을 만한 사람에겐 흔히 해 온 일이었다. 여자는 으레 손님의 솜씨를 믿는 얼굴이었다. 여자의 갑작스런 주문에 이번에는 오히려 사내 쪽이 뜻밖인 모양이었다. 여자가 밀어 보낸 북통을 앞에 한 사내의 눈길엔 졸지에 일을 당하고 당황해하는 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여자의 눈길은 거의 일방적으로 손님을 강요해 오고 있는 식이었다. “하두 오래 손을 잡아 본 일이 없어서……. 내 장단이 자네 소리에 잘 맞아 들지 모르겠네…….” 사내도 마침내는 여인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듯 천천히 자기 앞으로 북통을 끌어당겨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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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하촌(김정한)-문제 모음 25제(2차) 봇목에 논을 가지고서도, ‘유아독존’ 식으로 날뛰는 절 사람들의 세도에 눌려 흘러오는 물조차 맘대로 못댄 곰보 고 서방은, 마침내 딴은 큰맘을 먹고 자기 논 물꼬를 조금 더 터놓았다. 그러자 그걸 본 한 양반이 빽 소리를 내지르며 쫓아왔다. 오더니 다짜고짜로, ㉠“왜 또 손을 대요?” “인제 물도 다 돼 가고 하니 나두 좀 대야지요.” 하다가 고 서방은 자기 말이 너무나 약한 것을 깨닫고 한마디 더 보태었다. ㉡“그리고 당신 논에는 물이 벌써 철철 넘고 있지 않소.” “뭐? 넘어? 어디 넘어? 이 양반이 눈이 있나 없나?” 하며 그는 곰보 논 물꼬를 봉하려고 들었다.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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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상의 눈물(전상국)-문제 모음 20제(2차) 새 학년이 시작된 고등 학교 2학년 학급, 담임은 자율이란 말로 학생들 위에 군림하고 싶어하고, 최기표를 중심으로 한 재수파는 학생들을 폭력으로 장악하려 한다. 의욕에 찬 담임은 반장 임형우와 함께 최기표를 길들이기 시작한다. 형우는 시험 시간에 기표에게 커닝 쪽지를 돌리려 했다가 그의 비위를 상하게 만들어 그에게 린치를 당한다. 형우는 가해자인 기표의 이름을 끝내 밝히지 않음으로써 의리의 영웅이 되고, 피를 판 돈을 기표에게 바치던 재수파가 그에게 용서를 빈다. 얼마 후 형우는 담임과 함께 기표의 어려운 가정 사정과 재수파의 행동을 미화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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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미동 시인(양귀자)-문제 모음 28제(1차) I410-ECN-0102-2023-000-001632895 원미동 시인에게는 또 다른 별명이 있다. 퀭한 두 눈에 부스스한 머리칼, 사시사철 껴입고 다니는 물들인 군용 점퍼와 희끄무레하게 닳아빠진 낡은 청바지가 밤중에 보면 꼭 몽달귀신 같다고 서울 미용실의 미용사 경자 언니가 맨 처음 그를 ‘몽달 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경자 언니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를 좀 경멸하듯이, 어린애 다루듯 함부로 하는 게 보통인데 까닭은 그가 약간 돌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어떻게 살짝 돌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보통 사람과 다른 것만은 틀림없었다. 몽달 씨는 무궁화 연립 주택 3층에 살고 있었다. 베란다에 화분이 유난히 많고 새장이 세 개나 걸려 있는 몽달 씨네 집은 여름이면 우리 동네에서는 드물게 윙윙거리며 하루 종일 에어컨이 돌아가는 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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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르는 북(최일남)-24문제(EBS 현대 소설 독해의 원리 대비) 정작 문제가 터진 건 손님들이 돌아가고 난 후였다. 아들은 민 노인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잡았다. 아버지는 왜 제 체면을 판판이 우그러뜨리냐는 게 항변의 줄거리였다. 그 녀석들은 아버지의 북소리를 꼭 듣고 싶어서 청한 것이 아니라, 그 북을 통해 자기의 면목이나 위치를 빈정대기 위해서 그러는 것임을 왜 모르냐고, 민 노인의 괜찮은 기분을 구석으로 떼밀어 조각을 내었다. 아들 옆에서 입을 꼭 다물고 있는 며느리는, 차라리 더 많은 힐난을 내쏘고 있음을 민 노인은 모르지 않았다. 아들 내외는 요컨대 아버지가 그냥 보통 노인네로 머물러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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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산댁이(오영수)-13문제(EBS 현대 소설 독해의 원리 대비)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무슨 관청 같은 집도 화산댁이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아들을 만난 반가움보다도 수세미처럼 엉클리는 심사를 주체할 수 없었다. 빨간 스웨터를 입고 너덧 살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말끄러미 화산댁이를 바라보고 “아부지, 이거 누고 응?” / 화산댁이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하던 손녀딸이다. “할메다!” / “우리 할메?” / “음!” 아들은 맥없는 대답을 하면서 헌 고무신 한 켤레를 내왔다. 화산댁이는 걸레로 터실터실 불은 발뒤꿈치 더더기를 훔치면서, “그렇기, 나고는 첨 보니…….” 하는데 아들은 손끝에 짚세기를 걸고 나가 쓰레기통에다 던져 버렸다. 고무신이 대견찮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길 걷는 데는 짚세기가 고작인데 하니 아직 날도 안 드러난 짚세기가 화산댁이는 못내 아까웠다. 다다미방도 어색했지만, 눈이 부시도록 번들거리는 의롱이 두 개나 놓였고, 그 옆에는 앉은키만 한 경대도 놓였다. 벽에는 풀기 없는 무색옷들이 쭈르르 걸렸다. 모든 것이 낯선 것들이었다. ㉠모든 것이 손도 못 댈 것 같고 주저스럽고 조심스럽기만 했다. 우선 어디가 구들목이며 어디 어떻게 앉아야 할지, 마치 종이 상전 방에 불려 온 것처럼 앉을 자리부터가 만만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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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방 전후(이태준)-문제 모음 31제(1차) 현은 집을 팔지는 않았다. 구라파에서 제이 전선이 아직 전개되지 않았고 태평양에서는 일본군이 아직 라바울을 지킨다고는 하나 멀어야 이삼 년이겠지 하는 심산으로 집을 최대한도로 잡혀만 가지고 서울을 떠난 것이다. 그곳 공의(公醫)*를 아는 것이 반연으로 강원도 어느 산읍이었다. 철도에서 팔십 리를 버스로 들어오는 곳이요, 예전엔 현감이 있던 곳이나 지금은 면소와 주재소뿐의 한적한 구읍이다. 어느 시골서나 공의는 관리들과 무관하니* 무엇보다 그 덕으로 징용이나 면할까 함이요, 다음으로 잡곡의 소산지니 식량 해결을 위해서요, 그러고는 가까이 임진강 상류가 있어 낚시질로 세월을 기다릴 수 있음도 현이 그곳을 택한 이유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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