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과연 실재하는 것일까? 과거는 경험할 수 있는 세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에 우리가 과거를 경험적으로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과거는 우리의 인식 너머에 있는 실재이다. 그래서 역사가는 과거라는 원본과 역사라는 모사품의 관계로 자신의 연구를 수행하지 않으며, 실제로는 역사와 또 다른 역사의 관계로 자신의 연구를 수행한다. 과거라는 원본은 실제 일어났던 사실이라는 점에서 존재론적으로는 실재하는 것이 틀림없지만, 그것을 현재의 역사가가 인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식론적으로는 실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역사가는 지금 우리에게 부재하는 과거를 현재화해 우리의 현실인 것처럼 믿게 만드는 시뮬라시옹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